재판받을 권리와 국가면제의 관계
재판받을 권리와 국가면제의 의의
전통국제법은 국가주권을 존중하였으나 현대국제법은 강행규범의 도입과 인권존중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인권조약이 발달하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 주권을 존중하기 위해 개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봉쇄하는 국가면제와 충돌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인권조약의 가입국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경향이 짙어졌고, 그 결과 국가면제와 재판받을 권리와의 관계 검토가 요구된다.
재판받을 권리의 법적 성질
재판받을 권리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 각 국가의 국내법뿐만 아니라 국제인권 조약( ICCPR, 유럽인권협약 등)에도 규정되어 있다. 국내인권법은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중심의 법인 반면, 국제 인권법은 국가들로 하여금 기본적 권리인 인권을 보장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의무 중심의 법이다. 그러나 이는 언제까지나 조약상의 의무일 뿐이며, 다만 몇몇의 권리는 관행으로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권리 즉 재판받을 권리는 과연 절대적 권리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각 국가의 국내법은 국가안보나 공공질서 유지를 이유로 기본적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국제 인권법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규정을 두고 있다. ICCPR 제4조는 훼손조항(derogation clause)에서 공공의 비상사태에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데, '재판받을 권리'는 이러한 권리 목록에 속하지 않아 절대적 권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주권존중과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할 의무의 관계
각 국가는 타국의 주권을 존중할 의무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조약상의 의무로서 개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할 의무 또한 가진다. 양자의 관계를 다룬 Forgaty vs. UK case와 Al-Adsani vs.UK case에서 ECHR(유럽인권재판소)는 영국이 주권면제를 이유로 재판관할을 거부한 것은 유럽인권협약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 같은 판결의 근거는 '판단의 여유 margin of appreciation'이었는데, 이에 다르면 공공의 안전과 개인의 인권사이에 충돌이 있는 경우 당사국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할 일정의 재량권을 일차적으로 가지며, 이로 인한 인권의 침해는 협약 위반을 구성하지 않는다. 한편, 그 제한은 1) 적법한 목적과 2) 제한 수단과 목적 간의 비례성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국가 예양이라는 주권면제의 목적은 적법한 것이며, 재판받을 권리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므로 수단과 목적 간의 비례성을 만족시킨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ICCPR 등 국제인권법상의 재판받을 권리의 법적성질과 ECHR의 태도를 보건대, 재판받을 권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 권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ECHR이 언급한 '판단의 여유 margin of appreciation'을 적용한다면, 국가 재량에 따라 주권면제 존중의무가 우선 적용될 수 있으며, 이는 ICCPR 등 국제인권법상의 재판받은 권리의 존중 의무 위반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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