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 불인도 원칙
정치범 불인도 원칙의 의의
정치범 불인도 원칙은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는 청구국이 범죄인 인도의 모든 실체적 요건을 갖추어 인도를 청구하였다 하더라도 그 범죄인이 정치범죄를 행하였다고 판단하는 경우, 그 범죄인을 인도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원칙(범죄인의 정치적 행위를 이유로 인도를 금지하는 것)이다. 정치범 불인도 원칙을 인정하는 것은 세 가지의 이익 즉 피청구인의 이익, 관련국의 이익, 국제공공질서유지라는 이익을 우리해서이다. 이는 1833년 벨기에의 국내법에 처음 도입되고 1834년 프랑스-벨기에 간 조약에 처음 규정된 이후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국내법과 범죄인 인도조약에 이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행의 일관성 및 획일성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으나, 아직 그 법적확신이 모호한 바, 국제법상 관습법으로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동 원칙에 법적확신이 응고되었다면 양자조약에서 구태여 동 원칙을 명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범 불인도 원칙의 가장 큰 쟁점은 국제법상 정치범이라는 개념과 적용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범의 정의가 시대마다 각 국이 처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마다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것인데, 그 결과 정치범을 판단하는 기준은 '피청구국'(인도국)의 사법적 해석에 맡겨져 있으므로 각 국가의 태도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대한 각 국가의 실행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대해 영미법계 국가들은 부수이론(incidence test)에 근거하여 정치범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1) 그 국가 내에 정치적 소요, 내란, 반란, 봉기 등이 있을 것 그리고 2) 그 범죄가 소요 등에 부수하여 행해졌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범의 범위를 매우 좁게 본 것으로 정치범 불인도 원칙의 도입 배경인 인간의 정치적 사상, 표현의 자유보호라는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와 달리,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대해 대륙법계 국가들은 1) 정치적 목적, 동기만 있으면 정치범죄로 보는 주관주의 2) 목적 동기와 무관히 범죄의 결과가 국가 정치조직에 향한 것이라면 정치 범죄로 보는 객관주의 3) 양 요소를 다 함께 고려하는 절충주의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주관주의는 보호대상을 광범위하게 인정함으로써 보호법익이 지나치게 넓고, 동기와 목적만을 인정하므로 결과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편, 객관주의는 동기,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행위의 결과만을 본다는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절충주의를 택하고 있다.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서 절충주의 입장 중 가장 발달된 것은 스위스 모델이다. 스위스 모델은 범죄의 혼합적 성격을 주목하여 1) 우월성 predominance or preponderarnce 이론과 2) 비례성 proportionality 이론을 적용하여 정치범의 여부를 판단한다. 먼저 우월성이론에 따르면, 보통범죄요소를 능가(압도적으로 정치적)한다면 전체범죄가 정치범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비례성이론에 따르면, 범죄행위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이어야 하며(실효성 effectiveness 요건), 가능한 한 사적인 권리는 침해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심각한 범죄, 예를 들어 테러범죄의 경우는 비례성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스위스 모델은 범죄의 동기와 목적, 행위의 결과, 침해된 이익의 중요성 모두를 종합적, 신축적으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국제사회의 변화하는 현실에 적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대한 한국의 태도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대해 한국은 정치범의 판단기준으로 절충주의를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우엔후창 사건에서 서울 고등법원이 처음으로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범죄인의 동기, 목적, 기타 주관적 심리요소와 피해법익이 국가적 내지 정치적 조직질서의 파괴인지 여부와 같은 객관적 요소는 물론, 범죄인이 속한 조직의 정치적 성격과 견해, 위 조직의 활동 내용과 범죄인의 역할, 범행의 구체적인 경위 등의 제반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2013년 리우치앙사건에서 또한 스위스식 비례성, 우월성이론을 택하면서 그 외 청구국과 비청구국 간 역사적 배경, 역사적 사실들의 추가적 요소가 고려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택한 기준에 따르면 1) 범행동기 2) 범행목적 3) 범행대상의 성격(상징) 4) 정치적 목적과 수단의 유기적 관련성 5) 범행의 법적, 사실적 성격 6) 범행의 잔학성 즉 법익침해와 정치적 목적 사이의 균형 등 주관적, 객관적 사정을 정치범 불인도 원칙의 목적에 맞추어 종합적으로 형량 하여야 한다. 추가적으로 범행목적과 배경에 따라서는 인도청구국과 인도국 간의 역사적 배경,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차이 및 입장의 대립과 같은 정치적 상황 등도 고려하여 범죄의 상대적 정치성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재판부의 태도를 볼 때,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대해 한국은 기본적으로 스위스식 우월성, 비례성 이론을 취하고 있지만 그 외 역사적 배경, 사실 등의 추가적 요소를 고려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리우치앙 사건에서 처럼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범죄는 정치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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